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ABO 혈액형—A, B, AB, O—은 단순한 병원 검사 결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혈액형은 유전학의 기본 원리, 특히 하디-바인베르크 평형(Hardy-Weinberg equilibrium, HWE)이라는 법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법칙은 유전자의 분포가 어떤 조건에서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특히 ABO 혈액형 유전은 이 이론의 실제 적용 예로 자주 소개된다. 이번 글에서는 ABO 혈액형이 어떻게 유전되는지를 기본부터 설명하고, 이 분포가 실제 인구 집단에서 어떻게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을 따르는지를 알기 쉽게 풀어본다.
혈액형의 비밀: ABO 유전과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으로 알아보는 혈액형 유전의 원리
요약
- ABO 혈액형은 세 가지 대립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A, B, O 유전형 조합에 따라 표현형이 결정된다.
-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은 유전자와 유전자형의 분포가 세대 간 변하지 않는 조건을 설명하는 유전 법칙이다.
- 혈액형 분포는 실제 인구 집단에서 하디-바인베르크 평형과 매우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 ABO 혈액형의 유전형 빈도는 대립유전자 빈도(p, q, r)를 통해 수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 HWE를 이용하면 특정 혈액형이 집단에서 얼마나 흔한지 또는 드문지를 정량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혈액형 유전 분석은 의료, 인류학, 법의학, 집단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ABO 혈액형, 단순한 종류 구분이 아닌 유전적 코드
ABO 혈액형은 흔히 ‘A형’, ‘B형’, ‘AB형’, ‘O형’으로 분류된다. 이는 적혈구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A 또는 B)과 이들의 유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표면 항원은 단순한 표식이 아닌,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특성이다.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
- ABO 혈액형은 9번 염색체에 위치한 ABO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 이 유전자는 세 가지 주요 대립유전자(allele) 를 갖는다:
- IA: A 항원을 생성
- IB: B 항원을 생성
- i: 항원을 생성하지 않음 (O형)
표현형과 유전자형의 조합
표현형 | 가능한 유전자형 |
A형 | IAIA, IAi |
B형 | IBIB, IBi |
AB형 | IAIB |
O형 | ii |
이는 공우성(co-dominance) 의 전형적인 예로, IA와 IB는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동시에 발현되며, i는 열성이다. 따라서 A형 부모가 꼭 A형 자녀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혈액형 유전 원리는 유전자형에 따른 확률 계산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유전자의 안정한 수학
1908년, 고드프리 하디(G.H. Hardy) 와 빌헬름 바인베르크(W. Weinberg) 는 서로 독립적으로 유전자 빈도와 유전자형 빈도가 세대 간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이 이론은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집단 내 유전자의 분포가 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조건
- 무작위 교배
- 무한한 집단 크기
- 자연선택 없음
- 돌연변이 없음
- 이입 또는 이출 없음
이 조건이 모두 만족된다면, 세대가 반복되어도 유전자 빈도는 변하지 않으며, 다음 수식이 성립한다. 이를 통해 집단 내 혈액형 비율을 예측할 수 있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혈액형 비율과 HWE 적용
현실에서는 하디-바인베르크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지는 않지만, 대규모 인구 집단에서는 상당히 가까운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인구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혈액형 분포를 관찰할 수 있다.
▪ 한국인의 혈액형 분포 (추정)
- A형: 약 34%
- B형: 약 27%
- O형: 약 28%
- AB형: 약 11%
이 수치를 이용하면 실제 대립유전자의 빈도를 역산할 수 있으며, 다시 이로부터 유전자형 비율을 추정하는 데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활용된다.
▪ 역산 예시
- O형은 ii 유전자형이므로, r² = 0.28 → r ≈ 0.53
- A형은 IAIA 또는 IAi이므로, p² + 2pr ≈ 0.34
- 위 식에서 p를 계산 가능 → p ≈ 0.26
- 마찬가지로 q ≈ 0.21 (IB 빈도)
이러한 대립유전자 빈도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다르게 나타나며, 인류 집단의 유전적 구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하디-바인베르크 평형(HWE)의 한계
이처럼 실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는 HWE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도 갖는다:
이상적인 조건에만 적용 가능
HWE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상 조건을 전제로 한다:
- 무작위 교배(Random mating)
- 매우 큰 집단 크기(무한대에 가까움)
- 자연선택 없음
- 돌연변이 없음
- 이입(이민)이나 유전자 유출 없음
그러나, 실제 생물 집단에서는 이 조건들이 거의 항상 어긋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평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무작위 교배의 영향 간과
현실에서는 근친교배, 선호 교배, 유사 교배 등 비무작위 교배(non-random mating) 가 흔하다.
이 경우, 유전자형의 분포가 HWE에서 크게 벗어나며, 예측력이 떨어지게 된다.
자연선택을 반영하지 못함
HWE는 자연선택이 없다는 가정하에 유전자가 유지된다고 전제하지만, 실제 집단에서는 특정 유전자가 생존 또는 생식에 유리할 경우 빈도가 변화하게 된다.
- 예: O형이 특정 질병에 저항성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며 O형 빈도가 높아질 수 있음.
유전적 부동에 취약
작은 집단에서는 유전자의 무작위 변화가 크기 때문에, 표본 효과로 인해 유전자 빈도가 급격히 변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섬 집단, 격리된 개체군, 병목 현상 등에서 자주 발생한다.
유전자 상호작용과 환경 요인 무시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 또는 환경 요인에 따른 표현형 변화는 HWE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 현실의 유전자는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복합적인 요인들이 표현형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은 “진화가 없는 상태”를 가정한 이론적 기준점으로서 유용하다.
그러나, 현실 집단은 대부분 이 조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HWE는 유전자 분포가 변하는 이유를 탐색하기 위한 비교 도구로 활용되어야 하며, 그 자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마무리
혈액형은 우리 일상에서 매우 익숙한 개념이지만, 그 속에는 깊이 있는 유전학 원리가 숨어 있다. 특히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은 우리가 왜 특정 혈액형을 더 자주 보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론적 기반이다. 단순히 A형이 많다거나, O형이 흔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분포가 어떻게 유전적으로 가능하며, 실제 인구 집단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생물학이 주는 놀라운 통찰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글
- 색맹과 색약의 유전적 특성:
https://kimverick.com/%ec%83%89%eb%a7%b9-%ec%83%89%ec%95%bd-%ec%a0%81%eb%a1%9d%ec%83%89%eb%a7%b9-%ec%a0%81%eb%a1%9d%ec%83%89%ec%95%bd-%ec%a0%81%eb%85%b9%ec%83%89%ec%95%bd-x%ec%97%bc%ec%83%89%ec%b2%b4-%ec%97%b0%ea%b4%80/ - 생물다양성을 만드는 유전적 원리, 감수분열과 돌연변이:
https://kimverick.com/%ec%83%9d%eb%ac%bc%eb%8b%a4%ec%96%91%ec%84%b1-%ea%b0%90%ec%88%98%eb%b6%84%ec%97%b4-%eb%8f%8c%ec%97%b0%eb%b3%80%ec%9d%b4-%eb%a9%98%eb%8d%b8%ec%9d%98-%eb%b2%95%ec%b9%99-%eb%8c%80%eb%a6%bd%ec%9c%a0/ - 유전의 원리: 멘델이 3가지 유전 법칙:
https://kimverick.com/%eb%a9%98%eb%8d%b8%ec%9d%98-%ec%9c%a0%ec%a0%84-%eb%b2%95%ec%b9%99-%ec%9a%b0%ec%97%b4-%eb%b6%84%eb%a6%ac-%eb%8f%85%eb%a6%bd-%ec%99%84%eb%91%90%ec%bd%a9-%ea%b0%9c%eb%8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