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생명의 주체가 개체가 아니라, 자신을 복제하려는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혁명적 사고의 뿌리는 훨씬 이전, 1930년 로널드 피셔가 제시한 성비 이론(Sex Ratio Theory)에 있다.
피셔는 『자연선택의 유전이론』에서 암컷과 수컷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유를 균형의 수학으로 설명했다. 그의 통찰은 진화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계산된 과정임을 드러냈다. 결국 피셔의 성비 이론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이어지며, 진화를 전략으로서의 유전자 게임으로 재정의하게 되었다.
피셔의 성비 이론이 ‘이기적 유전자’로 진화한 이유
요약
- 피셔의 성비 이론은 진화의 균형 원리를 수학으로 설명했다.
- 피셔의 원리는 성비 1:1은 유전자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안정 상태를 뜻한다.
- 이 균형 개념은 ESS(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으로 발전했다.
- 도킨스는 이 전략 개념을 유전자의 복제 수준으로 확장했다.
- 유전자는 자신을 복제하기 위해 개체의 성비·행동을 조종한다.
- 피셔의 수학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의 뼈대가 되었다.
피셔의 성비 이론 ― 진화는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
로널드 피셔는 1930년 『자연선택의 유전이론(The Genetical Theory of Natural Selection)』에서 자연선택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모델이 바로 성비 이론(Sex Ratio Theory)이다.
그의 질문은 단순했다.
“왜 대부분의 생물은 수컷과 암컷의 비율이 1:1일까?”
만약 암컷이 많다면 수컷의 짝짓기 기회가 더 많아져, 수컷을 더 낳는 개체가 더 많은 손자 세대를 남긴다. 반대로 수컷이 많으면 암컷을 낳는 쪽이 유리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성비는 1:1로 안정된다.
피셔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유전자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균형 상태라고 보았다.
즉, 진화는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균형점을 향해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균형에서 전략으로 ― ESS의 탄생
피셔의 통찰은 이후 진화학자들에 의해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ESS란,
“한 전략이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졌을 때,
그 어떤 새로운 전략도 그 균형을 깨뜨릴 수 없는 상태.”
여기서, 성비 1:1은 바로 이런 ESS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개념은 단순한 수학 모델을 넘어,
자연 속 모든 행동과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원리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 새의 육아 분담,
- 곤충의 사회성,
- 짝짓기 행동 등도 모두
‘어떤 전략이 유리한가?’라는 계산 아래 작동한다.
이 시점부터 진화는 “적응의 과정”이 아니라,
“전략의 게임(game of strategies)”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유전자의 시선 ― 전략의 주체가 바뀌다
1970년대 초, 젊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ESS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그 전략을 실제로 선택하고 계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피셔의 모델에서는 개체가 전략의 단위였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 시선을 유전자(gene)로 옮겼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는 자기 복제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개체의 성비, 행동, 심지어 협력까지도 조종한다.
즉, 진화의 계산 주체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다.
이 관점은 ‘균형의 수학’이 ‘복제의 전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도킨스 ― 균형의 수학에서 유전자의 전략으로
1976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통해 진화의 주체를 완전히 재정의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개체는 유전자의 생존 기계일 뿐이다.”
그는 피셔가 말한 균형 상태(성비 1:1, ESS)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했다.
- 성비가 1:1로 유지되는 이유는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효율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 각 개체의 전략은 결국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다.
이로써 피셔의 “수학적 균형”은 도킨스의 “유전자의 전략”으로 진화했다.
피셔가 ‘왜 균형이 유지되는가’를 물었다면,
도킨스는 ‘누가 그 균형을 설계하는가’를 답한 셈이다.
마무리 ― 균형이 전략이 될 때, 진화는 계산이 된다
피셔의 성비 이론은 단순한 수학적 법칙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 속 생명체들이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이기적 의도’를 드러낸 첫 단서였다. 도킨스는 그 균형의 배후에서 유전자의 의사결정을 보았다.
“균형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완벽한 전략이다.”
피셔의 성비 모델에서 시작된 이 계산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완성되며, 진화를 단순한 생물학의 법칙이 아닌 전략과 게임의 언어로 해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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